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남 공화국 (문단 편집) === 멸망 === [[파일:남베트남 최후의 날.jpg]] 독립궁(현 통일궁) 정문을 쳐부수고 들어오는 베트콩군의 [[59식 전차|전차]](1975년 4월 30일 11시 30분 사이공) [Youtube(imJcfciVGa4)] 1984년 4월 30일자 KBS2 <11시에 만납시다> 이대용(전 주월공사) 인터뷰 영상. 1973년 1월에 파리 협정을 체결한 [[미국]]이 전쟁에서 손 털고 떠나버리자 베트남 공화국은 완전히 '''[[새(싸이)|새 되고 말았다.]]''' 북베트남, 베트콩과의 교전은 공식적으로는 멈춰졌지만 북베트남은 협정을 파기하고 전쟁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74년 12월 18일부터 1975년 1월 8일까지 '남부 해방'에 대한 노동당 정치국 회의가 열렸다. 1975년 3월 10일에 시작된 북베트남의 막판 공세에서 [[남베트남군]]은 쑤언록에서 치열하게 싸운 18사단(역설적이게도 18사단은 원래는 최약체 사단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같은 일부 부대의 영웅적인 항전을 제외하면 일패도지, 베트남 민주 공화국에 병합되고 말았다.[* 결국 18사단을 이끌었던 살아남은 지휘관들은 전쟁후 숙청당했고 전투 후 포로로 붙잡혔던 장병들은 모조리 재교육수용소에 들어가야했다.] 미국이 철수하면서 엄청난 군사지원을 해줘서 일시적으로 세계 순위권의 군사력을 가질 수 있었는데도 패퇴하고 만 것이다. 당시 베트남 공화국은 미국이 준 장비만으로도 공군력 세계 4위, 총 병력수 100만이 넘는 대군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 순위권의 군사력이란 것은 잘 보면 '''[[조선인민군/열악한 현실|빈 껍데기였다]]'''. 공군력도 숫자로만 4위, 실제 전력은 북폭을 할 능력도 없고 거의 다 지원기나 수송기 위주였다. 100만 병력이란 것도 정규군은 45만 수준이고 나머지는 민병대와 지방대이다, 민병대와 지방대는 실제 전투전력이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겉은 그나마 번드르르했지만 안은 엉망이었다. 미국이 준 무기의 규모는 정말 세계 순위권에 들 수준이었으나, 정작 그 순위권에 드는 규모의 '''무기를 굴릴 돈과 물자는 주지 않았다'''. 미국도 일부러 안 준 게 아니라 베트남 전쟁의 수렁 때문에 경제난이 심각했고, 미국 행정부가 지원을 위해 예산을 편성해 [[미국 의회]]에 허락을 받으려고 했으나 미 의회에서 더이상 부패 정권에게 지원은 없을 것이라는 이유로 삭감했고 여론도 이미 남베트남 지원에 반대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1975년의 최종공세 당시 남베트남군은 연료와 부품이 없어 비행기도 제대로 띄우지 못했고 탄약의 부족으로 전투에도 제한을 받았다. 전투 중에 탄약 아껴쓰라는 명령[* 적군이 눈에 보이면 쏘라고 할 지경이었다.]이 내려올 지경이었다. 전술적으로도 미국식 전술과 미군의 지원에 너무 의지하게 된 것이 약점이 됐다. 미군만 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군대가 미군처럼 싸우는 데 익숙해져버렸다.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이 지원하는 베트콩 게릴라를 잡으려고 전군을 국토에 넓게 분산시켰는데, 부족한 병력을 무리하게 넓게 펼치다보니 전 국토의 치안 유지 능력이 악화되었다. 결국 전략을 수정하여 주요 거점을 안전하게 확보한 다음 토벌에 나서기로 결정하고 대대적인 부대 재배치를 감행하였으나, 그 첩보를 입수한 북베트남이 부대 재배치가 이루어지는 빈틈을 노려 침공해왔다. 방어체계를 제대로 굳히기도 전에 [[전격전]]을 당한 것이다. 티우의 전략은 현재 병력으로는 모든 곳을 지킬 수 없으니 해안 주요도시 등 지킬 곳만 지키는 식으로 병력 재배치 계획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2군단 몰락을 가져와 전체적인 남베트남 육군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 중국의 [[국공내전]] 당시 [[장제스]]의 국민당군도 이런 식으로 주요거점을 중심으로 재배치를 감행하다가 [[마오쩌둥]]의 공산군에게 각개격파당하고 결국 장제스는 전쟁에서 패배하여 [[타이완]]으로 쫓겨났는데 남베트남이 똑같은 전철을 밟은 것이다.] 그리고 부패하고 무능한 베트남 공화국에 이미 민심은 떠나 있었다. 이로 인해 '''개전 초기에 100만이 넘는 병력 중 반 이상이 [[탈영]]을 하여'''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다. [[응우옌반티에우]] 총통은 미국을 맹비난하며 1975년 4월 21일 [[대만]]으로 망명했고, 그 후임인 [[쩐반흐엉]] 역시 4월 28일 하야하고 [[즈엉반민]][* 1960년대 군사정부 수반을 역임한 즈엉반민 맞다.]에게 총통직을 주었다. 즈엉반민은 4월 30일 결국 항복해버렸다. 북베트남의 지도자였던 호찌민은 생전에 베트남 공화국을 정복하는데 30년 이상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나, 그가 죽은 지 몇년 뒤인 1975년 4월 30일 '''개전 1개월 만에 정권이 무너졌다'''.[* 46년 뒤인 [[2021년]], 미국에게 지원받은 또 다른 친미 국가 [[아프가니스탄]]에게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똑같은일이 벌어지게 된다]]. 둘 다 미국에게 수없이 많은 지원을 받았으나 점점 나아지기는커녕 악화되는 전황과 부패한 정권,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이 빠지자마자 똑같이 '''1달'''만에 망했다. 그리고 친미 정권이 세워진 지 정확히 20년 만에 패망했다는 공통점이 있어 어떤 역사적 법칙이라도 있는건지 의심하게 된다.] 이후 남베트남에는 북베트남의 [[괴뢰 정권]]인 '[[남베트남 공화국]](Cộng hòa Miền Nam Việt Nam)'이 세워져 이듬해인 1976년 7월 2일 북베트남과 통합하여, [[베트남 통일]]을 이루었다. 북베트남은 1975년 전역에서 최소 50억 달러[* 1975년 기준이다. 2023년 현재 가치 278억 달러(...)]에 해당하는 막대한 군수물자를 노획했다. 그 중에는 [[전차]] 550대([[M48 패튼]] 250대, [[M41 워커 불독]] 300대), [[대포]] 1,300문, [[트럭]] 4만2천대, [[박격포]] 1만2천문, 보병화기 200만정([[M16 소총]] 79만 1천정, [[M72 LAW]] 6만3천문, [[M79]] 유탄발사기 4만7천문 포함), [[무전기]] 4만8천개, [[탄약]] 13만톤, [[함선]] 940척, [[항공기]][* [[헬리콥터]] 포함] 877기([[F-5]] 73기, [[A-37]] 113기, [[A-1]] 36기, [[C-119]] 40기, [[AC-47]] 36기, [[UH-1]] 430기, [[CH-47]] 16기 포함)를 노획했다. 일일이 말하기도 힘든 이 막대한 군수물자는 모조리 북베트남의 손에 넘어갔고, 이 군사물자를 바탕으로 베트남은 1980년대 내내 인도차이나의 패권국으로 떵떵거리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